바흐.Bach_클래식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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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_Johann Sebastian Bach

음악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성으로 추앙받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거의 모든 작곡가에게 그 영향을 직접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비틀스(Beatles)마저도 자신들 음악의 근원이 바흐라 할 정도였다. 바흐란 이름은 음악사에 커다란 발자취로 남아 끊임없는 음악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음악가에게 보다 새로운 기회와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1685년 바흐는 독일 튀링겐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흐(Johann Ambrosius Bach)는 아이제나흐 의회에 속한 음악가였으며 바흐는 그의 8번째 막내였다. 바흐 집안은 200년 동안 50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 가문이다.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바흐는 음악의 자양분이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었으며, 바흐를 말할 때 그의 집안이 이야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흐는 9살 때 어머니를, 10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바흐는 큰 형 요한 크리스토프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크리스토프는 당시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캐논을 작곡한 사람)의 제자였다. 바흐의 음악 교육은 큰 형에게서 시작되었고, 악보를 필사해 가며 공부를 한 덕에 많은 대 작곡가들의 자양분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라이켄(J. Reiken)의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63km를 걸어갔으며, 또한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북스테후데(D. Buxtehude)의 연주를 듣기 위해 420km를 걸어갈 정도였다. 바흐가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이런 교육 환경과 열정 때문이었다.

바이마르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직업 연주자의 첫발을 내디딘 바흐는 중요한 오르간 작품 대다수가 바이마르 시대에 쓰였으며, 당시 이탈리아 음악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1717년 이후 쾨텐 시대에는 교회에 속해 있지 않아 굳이 교회 음악을 써야 할 필요가 없어 대부분 세속 작품을 썼다. 감정을 묘하게 자극하는 바흐 특유의 음악들은 이러한 세속 작품들이다. 특히 기악곡이 쏟아졌는데, 바흐 음악에서 주목받는 대다수 기악곡이 이때 나왔다. 

바흐는 생에 마지막 27년간을 라이프치히의 교회 음악 책임자로 있었다. 매 주일 예배를 위한 작품들과 교회 음악들을 써야 했기 때문에 줄기차게 악보를 써 내려갔다. 바흐 작품 목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칸타타(Cantata) 80%가 이때 작곡된 것이며, 수난곡 같은 대규모 교회 음악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바흐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회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모든 음악은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바흐란 말은 시냇물이란 뜻이지만 베토벤의 말처럼 그는 큰 바다였다. 바로크 시대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에 끝나고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_에클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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